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경위 == 사건 당일 범인 지충호는 청중으로 잠입해있다가 박근혜에게 다가가 10cm 가량의 [[커터칼]]을 박근혜의 우측 뺨에 대고 그어서 11cm 길이의 자창을 입혔다. 이 사고로 박근혜는 인근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봉합수술을 받았으며, 범인 지충호는 테러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유세장에서 '대한민국만세'라고 외친 뒤 칼을 버리고 달아나려 했으나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이후 경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때 박근혜가 입은 상처는 아슬아슬하게 안면신경을 비껴갔다고 하며 [[경동맥]]에 부상을 입었다면 [[사망]]하거나 정계를 은퇴해야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얼굴 근처로 워낙 위험한 급소라 이런 사건이 터지면 으레 나오는 자작극 의혹도 거의 없었다. 범행 배후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재판 전, 국선변호사와의 접견시 민주 투사의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해 '박근혜가 [[박정희|독재자]]의 딸이며, 자신이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화국]] 시절 억울하게 옥살이하여 범행했다'고 밝혔으나 거짓으로 밝혀졌다.[* [[박정희]]는 2공화국 시기(1961년)에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가 대통령 중심제로 [[대한민국 제3공화국|3공화국]] 헌법이 개정되어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7년 6대 대통령 재선도 성공하였다. 그리고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의 경우 원래라면 3선 금지에 막혀 출마가 불가능하지만 1969년 [[3선 개헌]]을 진행하여 접전 끝에 당선되었다. 이후 1972년 [[10월 유신|유신 헌법 개헌]]을 단행하여 [[대한민국 제4공화국|4공화국]] 대통령으로 임기를 수행하다 [[10.26 사건|1979년 10월 26일 사망했고,]] 1980년까지 4공화국이었다. 그래서 5공화국 시절은 틀린말이다.] 2006년 5월 29일 '폭력, 간통 등의 혐의'로 15년의 복역한 것에 대해 "내가 지은 죄에 비해 옥살이를 너무 오래해 억울하다. 먹고 살 방법을 마련해 달라"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결국 박근혜에게 "박 대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미안하다"고 했다. 이후 재판에서 공직선거법과 폭력행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상해로 징역 10년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2016년 5월에 출소했다. 그 이후에도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주 회자되는 사건인데, 박근혜 개인에게는 불행이겠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동정표를 받으며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됐다. 이미 선거 중반부터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고되어있던 [[4회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 만큼은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의 우세로 예측되고 있었으나, 이 사건이 대전시장 선거의 판세를 뒤엎어서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의 당선으로 결말이 났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전라북도 단 한 곳만 얻게 되는 유례 없는 참패를 거두게 한 효과를 보였다. 정치에 관심있다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전은요?''' 라는 별칭으로 자주 회자된다. 박근혜가 병원에서 깨어나서 한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다만 세간에는 "대전은요?" 말 한마디 때문에 대전시장이 뒤집혔다는 식의 호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선정적 보도에 가깝다. 동정표에 의해 결과가 뒤집힌 것은 피습 사건 자체 때문이지 박근혜의 말 한마디 때문이라 보기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